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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b2b) 소프트웨어의 소비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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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umerization of Enterprise Soft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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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소비자화

1. 좋은 식사와 와인이 소프트웨어를 팔아주던 시절

과거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이 그들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대상은 기업의 경영진 혹은 구매 담당자였다. 기업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과정은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입을 위한 직원 교육과 각종 컨설팅을 포함하는 대규모 거래였고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막대한 만큼 최종 결정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마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시공사를 선정하듯 소프트웨어 기업 간 입찰 경쟁은 익숙한 풍경이었으며 이러한 지난한 프로세스로 인해 기업의 실무자들이 최신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까지 대체로 수년 이상 소요되는 게 보통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제품의 품질(R&D)에 투자하기보다 세일즈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만들었고 많은 기업이 자사의 영업 네트워크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사세를 키웠다.

2. 클라우드 기술이 던진 작은 공, SaaS의 등장

200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영업 기술, 인적 네트워크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의 성공 방정식을 흔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컴퓨팅 자원을 손쉽게 공유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인프라에서부터 응용 소프트웨어까지 마치 서비스 이용하듯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참고: 위키 백과 - 클라우드 컴퓨팅의 역사) 바야흐로 Something as a Service의 시대를 열었다.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를 대표하는 AWS나 PaaS(Platform as a Service)를 대표하는 Google App Engine 역시 2000년대 중후반 등장한 대표적인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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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웹 브라우저에서 응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SaaS(Software as a Service)는 아직 콘셉트에 가깝던 클라우드 기술을 시장의 메인스트림으로 끌어다 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전까지 웹 애플리케이션의 표준이던 ASP(Application Server Provider) 기반 웹 애플리케이션은 기업의 자체 서버에 설치하는 On-premise 방식이라 서버 운영 및 관리 인력 채용 등 초기 도입에 큰 비용이 요구되었고 때문에 판매 과정에서 영업 역량이 구매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반의 SaaS는 사용료를 지불하기만 하면 바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도입 비용이 현저히 낮아서 기업의 부담이 줄어든다.

1세대 SaaS 기업인 Salesforce의 등장은 영업 주도 성장(Sales-led Growth)의 시대를 끝내고 마케팅 주도 성장(Marketing-led Growth)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당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을 지배하던 SAP, Oracle 대비 현저히 작은 규모, 부족한 영업력을 클라우드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탁월한 마케팅 역량으로 극복하여 CRM 시장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3. 기업 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간 트로이 목마

하지만 공고한 방벽을 구축해 둔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에게 초기 SaaS 제품은 큰 위협 요소가 아니었다.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형' 제품의 강력한 이점 중 하나인 '저렴한 비용'이 기업 시장의 '돈 많은' 고객에게 최우선 요구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걸 누가 사용하겠어?

일부 성공 사례가 있긴 했으나 SaaS 생태계가 깊이 뿌리내리기엔 기업의 빗장이 너무 단단히 잠겨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기업 시장에서 SaaS 제품이 대세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기업 시장을 공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로벌 경제 위기, 모바일 생태계의 탄생이 불러온 시장의 지형 변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제 위기와, 같은 해 있었던 애플의 아이폰 출시는 여러 측면에서 시장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경기 침체로 많은 직장인이 거리로 밀려나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소비 침체와 경쟁 심화로 기존 자영업자들의 위기감이 커졌다. 반면 아이폰이란 신 문물이 등장하며 모바일 생태계라는 새로운 기회가 열렸고 이 새로운 골드러시로 인터넷 비즈니스는 닷컴 붐 이후 최대의 호황을 맞이했다.

초기 SaaS 기업들은 온라인을 활용해 매출을 늘리고 싶은 자영업자, 비용을 줄이고 싶은 중소기업, 새로운 기회를 찾는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고 CRM, ERP 등 대형 기업을 위한 제품 대신 개인과 소규모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합한 제품을 제공하였다.

온라인 판매를 돕는 Shopify나 온라인 마케팅을 돕는 Mailchimp, 원격 협업을 돕는 Google Apps, Dropbox, Asana 등이 2000년대 중반 만들어졌고 이러한 소규모 비즈니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고객 모두가 소규모 비즈니스에 머물지는 않았다. SaaS 제품을 사용하던 작은 팀이 빠르게 성장하여 수 백, 수 천 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SaaS 기업이 자연스레 기업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제품 선택의 민주화로 등장한 사무실 Evangelist

SaaS가 기업 시장에 침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는 기업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기술 중심으로 시장 환경이 급변했고 기업의 업무 환경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다양한 기업들이 중앙 집권형 조직 구조에서 '권한을 가진 다수의 교차 기능 팀' 중심으로 조직도를 다시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MSA(Micro-Service Architecture)를 도입하는 등 제품/도메인 간 상호 의존성을 낮춰 자율적으로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레 기업의 소프트웨어 채택 권한을 중앙에서 팀으로, 다시 팀에서 개인으로 분산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이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은 경영진이나 구매 담당자의 마음에 드는 것만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어려워졌다.

Ben Thompson은 그의 블로그 Stratechery에서 Jira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2002년에 설립된 아틀라시안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소비자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인 지라는 구글 앱스처럼 개인이 먼저 사용하기 어려운 제품이며 그렇다고 구매 담당자에게 영업해 판매하는 전통적인 엔터프라이즈 제품과도 다르다. 이들이 혁신적인 이유는 기업이 아닌 기업 내 팀을 공략하는 판매 전략이었다. 이들은 기업 CIO에게 대접할 와인이나 영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신경쓰는 대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웹을 통해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하여 제품을 경험한 사람이 주변에 입소문을 내도록 하였다.

위 글은 현재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채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2가지 예시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구글 독스나 캘린더처럼 개인 사용자용 제품을 제공하여 확산시킨 이후 기업에서 사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먼저 개인용 노트 앱으로 사랑받은 '노션'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드롭박스' 등이 개인용 제품으로 시작해서 기업에 침투, 주요 업무 도구의 지위를 획득한 유사 케이스이다.

반면 다른 예시인 지라는 구글 캘린더나 노션처럼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하지만 지라는 개인 사용자를 그들의 판매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어째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는 이렇게 우아하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생산해내는 걸까?

전 NYT 디자인 디렉터이자 현재는 어도비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Khoi Vinh이 2007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던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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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두꺼운 매뉴얼, 복잡한 인터페이스, 느린 업데이트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라는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개인화된 사용자 경험, 빠른 업데이트 등을 통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개인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것에 집중했고 그 사용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면 자발적으로 지라의 홍보대사가 되어 팀에 도입하게 하였다.

이 두가지 예시는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의 핵심 타깃이 기업 내 기능 조직(Functional & Cross Functional Team)이나 개인 전문가(Professional Individuals)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이젠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기업 내 개인 전문가들을 자신들의 에반젤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좋은 제품이 기본이지만 AWS Global Summit이나 피그마의Config와 같은 콘퍼런스는 물론 웨비나, 팟캐스트, 블로그 등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들 사용자 그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발적으로 제품을 홍보하게 한다.

나만 해도 불과 며칠 전 Amplitude를 홍보하기 위한 데이터 관련 웨비나에 참가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프로덕트의 사용자 커뮤니티 채널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미국의 투자자인 Michael B. Gilory는 Dropbox의 IPO에 대해 적은 그의 포스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소유 방식이 온프레미스에서 SaaS로 전환된 것처럼 지금 우리는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판매 방식이 하향식 배포 방식에서 소비자 중심의 상향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소비자 화 = 무한 경쟁의 도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성공의 핵심이 소비자로 바뀌면서 독점 구조에 가깝던 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0년 전 까진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현재 Figma는 디지털 디자인 영역에서 Adobe를 압도하고 있고, Notion과 Airtable은 MS Office와 Google Apps가 차지하던 시장에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 Adobe를 위협하던 강력한 적이 Sketch였으며(참고), MS Office의 대항마는 Google Apps 였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라를 설명하며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개인화된 사용자 경험', '빠른 업데이트'라고 적었는데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팀에 새로 합류하는 동료들이 '지라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을 하는걸 보면 말이다.

이 지점에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소비자 화의 핵심이 드러난다. 과거에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는 한번 구매하면 쉽게 교체할 수 없는 기업 자산이었지만 이젠 언제라도 보다 더 개인화된, 더욱 더 직관적인, 더욱 더 소비자 관점의 편의성과 생산성을 제공하는 제품이 등장하면 쉽사리 교체될 수 있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 셈이다.

Sales-led and marketing-led had their time. The future is product-led growth.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는 그동안 영업 주도로 성장하던 시절과 마케팅 주도로 성장하는 단계를 거쳐왔다. 하지만 이젠 제품이 스스로 성장을 만들어내는 제품 주도 성장(Product-led Growth)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를 위해선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팀이 그들의 고객을 기업 그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며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의 니즈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최근 앞으로의 제품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나씩 정리해가는 중, 얼마 전 한 고객사와 나눈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들려준 여러 가지 요구사항 안에는 '재고 처리를 위해 기획전을 고민하는 MD'의 고충, '주문 클레임을 담당하는 운영 담당자'의 고충, '매체 광고를 담당하는 퍼포먼스 마케터'의 고충, 그리고 '상품 콘텐츠를 제작하는 콘텐츠 디자이너'의 고충이 모두 뒤섞여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재고 처리', '주문 클레임'과 같이 고객사의 '일'로 바라봤지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고객의 성장을 돕는 것'임에 변함없지만 이를 위해 제품은 고객 성장의 원동력인 기업의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돕고 어딜가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어 이 글의 주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P.S. 2016년 SaaS에 대한 글을 적을 때 까지만 해도 국내에 SaaS 기업이 많지 않았던데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 전망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최근 빠르게 커지는 국내 SaaS 생태계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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