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u Jung

2025년 회고: 슬기로운 회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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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노티스

올해 초 입사 6개월 차였던 나는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했다.

이 회사와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고, 남아있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마지막 퇴사 면담을 하기 전,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더 이상 이 회사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추천한 친구에게도 미리 얘기했다. 그가 퇴사의 이유를 물었고,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실, 퇴사 면담은 그저 절차일 뿐이었다. 조직장은 회사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그때 내겐 그저 틀에 박힌 질문들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 역시 내게 퇴사 사유에 대해 물었다. 어제 친구에게 했던 말을 비슷하게 늘어놓았고, 조직장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했다.

상투적인 면담이라 느끼던 도중,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 나는 반대편에 앉아서 퇴사하려는 동료를 설득하고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동료의 굳은 표정, 형식적인 대화, 어떤 말도 닿지 않던 그 분위기. 아마 맞은편에서 보는 내 모습도 그랬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상태를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면담을 중단하고, 현재 상황을 제대로 정리할 이틀의 시간을 요청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친구에게, 조직장에게 내뱉었던 퇴사 사유라는 것들, 그동안 회사의 문제로 느꼈던 것들이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어느 회사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굉장히 수동적인 관점에서 그것들을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떠나야 할 이유로 여기고 있었다는 게 새삼 당황스러웠다.

가장 큰 원인은 새 회사에 합류할 때 내가 온전히 몰입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새 회사에 품은 기대는 이곳에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보다, 이전 회사에서 리더로 마주했던 한계의 해답을 찾겠다는 바람에 가까웠다.

창업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면 어떤 관성이 생긴다. 조직이 커지면서 원하건 그렇지 않건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고, 마주하는 상황에 반응하듯 성장해야 한다. 결국 한계를 마주했고, 좀 더 앞선 스테이지의 기업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런 마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마음가짐은 자칫 '회사가 먼저 나에게 무언가를 줘야 기여하겠다'는 식으로 흐르기 쉽다.

또한 회사와 함께 나의 역할을 정의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원인이었다.

스타트업에선 급한 불이 곳곳에서 피어나고, 사람은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6개월 사이 세 번의 팀 이동이 있었다. 어디든 필요한 곳이 있으면 가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 회사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팀과 함께 그려볼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새로 합류한 사람에게는 회사가 함께 역할을 정의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회사에서 어떤 기대를 받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그 기대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 과정이 없으면, 새로 온 사람은 스스로 회사를 해석하고 자기 역할을 정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회사를 이해하는 창이 된다.

나 역시 그랬다. 팀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동료에 적응해야 했고, 그들과 대화하며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그 기간 밀접하게 협업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얼마 뒤 퇴사할 예정이었다는 점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다. 초기에 합류해 작은 팀에서부터 함께 고군분투하던 사람들이, 조직이 커지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변화에 서로 다른 온도를 갖게 된다. 때론 회의감이나 피로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친 사람들의 눈을 통해 회사를 배우는 사이,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회사를 보고 있었다.

문제가 보이면 해결할 대상이 아니라 떠나야 할 이유로 해석하게 되었다. 항상 한 발짝 거리를 두고 회사를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이 회사의 구성원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젠 결정해야 할 때였다.

떠날 것인지, 진짜 이 회사의 구성원으로,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어 회사가 풀어야 할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지. 다음 주 월요일 나는 조직장과의 면담을 통해 퇴사 노티스를 번복했다.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닌 팀의 구성원으로 나의 역할을 새로 정의해 나가기로 했다. 놀랍게도 그날 출근길은 전처럼 괴롭지 않았다.

바뀐 건 마음뿐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무척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원팀

나는 플랫폼 조직 내 알림, 승인, 빌링 등 공통 요소들을 다루는 팀의 PM을 맡고 있었다.

팀에선 "스쿼드가 맡기 모호한 것들을 모두 모아둔 팀"이라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정도로, 다른 팀에서 담당하던 일들이 담당자를 따라오거나, 담당자가 떠난 뒤 우리에게 넘어왔다. 하루의 대부분은 온콜 대응에 쓰였다.

원래 이 팀은 엔지니어 출신 TPM이 리드를 맡던 기능 조직이었다. 그는 팀 간 커뮤니케이션을 도맡으며 온콜 과제를 개발자들에게 배분했고, 개발자들은 그것을 해결했다. 효율적인 구조였다. 다만 개발자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직접 정의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떠났고, 조직 구조가 바뀌면서 PM이 있는 팀이 됐다. 그 PM이 바로 나였다.

수많은 컴포넌트에 대한 이해도, 기술적 배경도 부족한 상태였다. 매일 밀려드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내가 못하는 일의 부담은 동료들에게 전가됐고 그들을 지치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뢰 형성은 어려운게 당연해 보였다.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매일 치고 들어오는 이슈에 치여 정작 풀어야 할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계속 문제에 끌려다니다 소진될 게 뻔했다.

퇴사를 번복한 뒤, 나는 팀과 함께 일하는 방식을 새로 정의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우리 팀이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팀"이 아니라 미션과 목표를 가진 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팀과 함께 방향성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회사 목표와 정렬된 최우선 과제들을 정의했다.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가 생기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팀원 모두가 각자 판단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어갔다.

그 다음 풀어야 할 문제는 의사결정 구조를 정립하는 것이었다. 엔지니어링 의사결정이 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안정적인 엔지니어링 리더십과 이를 기반으로 한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직장의 도움을 받아 다른 팀의 스태프 백엔드 엔지니어를 영입했다. 기존 프론트엔드 개발자 중 한 분께는 스태프 역할을 요청했다. 이로써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의 책임자가 명확해졌다.

이러한 변화를 모두가 환영한 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껏 쌓여온 불신이 깊어 어떤 노력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결국 팀을 떠났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너무 지친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변화를 받아들인 이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팀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더 깊이 토론했고, 장기 방향성을 함께 고민했다.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빴던 예전과 달리, 우리는 같은 문제를 함께 풀고 있었다. 팀이 단단해질수록, 나는 퇴사를 번복했던 그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한 동료가 내게 말했다.

"저는 선우님이 이 팀에서 잘 해낼 수 없을거라 생각했어요. 팀이랑 맞지 않다고, 그런데 제가 틀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선우님과 함께 일해서 좋습니다."

올 한 해 가장 고맙고 기쁜 순간이었다.


관심이라는 것

라이어게임이라는 만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왜 사람을 믿지 못하냐고? 믿고 싶기 때문에 의심하는 거야." 타인의 평가나 소문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마주하고 경험하며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직에선 종종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사람을 직접 알아가는 과정은 수고롭지만, 남의 평가를 빌려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 불만이나 약점에 대한 이야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불편함을 주는 지점들은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기 마련이고, 이런 단편적인 정보들이 쌓이면 결국 사람을 약점으로만 정의하게 된다. 선입견이 실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기꺼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올해 조직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리더와 가까이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거침없이 방향을 설정하더니, 여러 이니셔티브를 동시에 진행시켰다.

실무자들을 여러 과제에 배치하고, 정체되어 있던 일들을 한꺼번에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일을 벌여놓고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그 추진력이 전략적 선택인지, 의욕만 앞선 행동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와 합을 맞춰 일을 해나가던 중 어느 시점에 깨달았다. 이전에는 모두가 바쁘게 일해도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불투명했다면, 이제는 달랐다. 그가 펼쳐놓은 일들이 어느덧 하나둘 트랙 위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프로젝트의 가시성 또한 명확하게 확보되었다.

그는 단순히 일을 벌리는 것이 아니었다. 큰 방향을 잡고 핵심에 집중하되, 세부적인 영역은 실무진이 채울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두고 있었다.

흩어져 있던 에너지를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 조직 전체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분명 배우고 싶은 강점이었다.

만약 관심을 갖고 마주하지 않았다면 나는 초반의 의구심에 머물러 배움의 기회를 그대로 놓쳤을지도 모른다.

약점은 가만히 있어도 보이지만, 강점은 보려고 노력해야 비로소 보인다.

"이 사람이 잘하는 건 뭘까, 이 사람 덕분에 되는 일은 뭘까, 내가 배울 건 뭘까." 동료를 향해 이런 의식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약점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채울 수 있고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고유한 강점은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렵다.

각자의 강점이 맞물릴 때 조직의 위대한 성과가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마치며

돌아보면 2025년은 현재의 직장에서 나의 진짜 회사 생활이 비로소 시작된 한 해였다.

퇴사 면담의 순간, 나를 관조하게 했던 그 찰나의 기시감을 그냥 지나쳤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관찰자가 되어 회사의 문제점들만 수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 자신을 멈춰 세우고 스스로를 되돌아본 것이 올해 가장 잘한 일이었다.

해골물도 마음먹기에 따라 약수가 된다더니,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꾸자마자 그토록 괴롭던 출근길이 설레는 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바뀐 것은 환경이 아니라 오직 나의 관점 뿐이었는데, 회사를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떠나야 할 이유를 찾는 냉소적인 관찰자가 되기는 쉽다.

하지만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팀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참여자로서의 회사 생활은 훨씬 더 의미 있고 값졌다.

2025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감사한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