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매니지먼트와 위임

위임도 일이 잘되게 하기 위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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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과 조직 내에서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고충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위임과 마이크로매니징'이란 주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나도 그동안 매니저 혹은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위임에 대해 많이 고민했기에, 이 주제에 대한 짧은 생각을 글로 정리해본다. 다만, 내 경험이 한정적이므로 초 중기 성장 단계의 스타트업을 기준으로 작성한 글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위임과 마이크로매니징의 의미

마이크로매니징은 매니저가 구성원의 업무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세부 사항을 지나치게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업무 행태는 팀의 성장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장기간의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는 구성원의 창의성과 독립성을 제한하여 성장을 방해하고, 일의 효율성과 팀워크를 저해할 수 있다.

반면, 매니저가 '위임을 잘 하는 것'은 조직 건전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위임이란 매니저가 가진 권한과 책임의 일부를 구성원에 나누어주어 이를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적절한 위임을 통해 매니저는 더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사용하고, 구성원은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

리더와 매니저는 명확한 목표와 기대치를 설정/부여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이해하고 있는 매니저들이여도 ‘마이크로매니징’ 한다는 평가를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매니저에게: 위임을 방임과 혼동하지 말자

좋은 위임은 조직 문화 성장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위임에 대한 문제를 겪는 조직의 경우 대개 중간 과정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소통 없이 결과에 해당하는 상태를 바로 실현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나도 초보 매니저로서 과정 없이 어딘가에서 본듯한 '좋은 위임'의 정의를 따라 팀을 운영하려 한 적이 있다. 중간 관리자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성과와 가용 자원에 대한 기대 수준을 맞추면 알아서 잘 해주리라 생각했고, 그게 신뢰를 보이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때론 원하던 결과를 이루기도 했지만, 기대하던 수준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위임'과 '방임'을 적절히 구분하지 못했다.

만약 위임이란 컨셉을 개인이 자산 관리자를 고용하는 과정에 비유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1. 우선 여러 후보를 만나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물론, 직접 대화하며 운용 스타일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자신의 기대와 잘 맞는지 평가할 것이다.

  2. 자산의 일부를 맡겨 성과를 검증한다. 성공적인 결과를 거둘 경우 좀 더 많은 자산을 맡긴다.

  3. 충분한 검증을 거치며 충분한 신뢰가 쌓였을 때 결과적으로 자산관리사는 나의 모든 자산을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개인 자산에 대한 관리를 맡길 때에도 위 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성패가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일련의 과정 없이 일임하는 것이 제대로 동작할리 없다.

좋은 위임은 단순히 업무를 맡기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도박 같은 것이 되어선 안된다. 조직의 성공을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신뢰와 관심을 투자하여 성과를 이루는 행위로 여기고 접근해야 한다.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 '라이어 게임'에서 '아키야마 신이치'가 '칸자키 나오'에게 한 충고이다. 이 충고는 위임과 방임을 혼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기에 적절한 내용이다.

아니, 사람은 의심하고 봐야 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은 즉, 그 사람을 알려는 행위라고. 「믿는다」. 그 행위는 틀림없이 숭고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라는 이름하에 하는 행위는 사실, 타인을 알려는 노력의 포기. 그것은 결코 「믿는」 것이 아닌 무관심. 무관심은 의심보다 비열한 행위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어.

다단계를 하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그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좋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며, 그 결과가 남을 속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 자들은 남을 속인다는 자각이 전혀 없어. 왜냐면 그 자들은 자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괴로워하게 될 지 상상하기를 외면하니까.

완벽한 사고정지. 무관심 상태의 극치지. 의심은 결코 「악」이 아냐. 진정한 악은 타인에게 무관심해지는 거지. 의심해야 해. 의심하고 의심해서, 그 마음속을 응시하는 거야. 사람은 정말 괴로운 일일수록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팀원에게: 사실 위임은 '하는게' 아니라 '이뤄지는 것'이다

조직에서 위임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가 작을 때 혼자 해결하던 일들이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 해결할 수 없게 되면 '위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위임은 기본적으로 다음 조건을 전제로 한다.

'위임 받은 이는 위임 하는 이가 기존에 내던 것과 동일하거나 더욱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

위 조건의 달성은 위임자에게 책임이고, 피위임자에게는 증명해야 할 과제이다. 그렇기에 위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단방향의 결정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매니저는 구성원의 역량을 고려하여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단계적으로 맡기고, 기대 수준을 충족하거나 초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투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매니저는 과업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꼼꼼한 피드백과 소통을 통해 상호간의 적절한 기대치와 성과 수준을 설정하는 방식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기능 영역(디자인, 개발 등)의 관리에서는 선임자가 후임자에게 축적된 경험을 전수하듯 How에 대한 코칭이 포함될 수 있다. 만약 매니저가 실무적 전문성을 갖지 않은 영역에서는 사전에 합의한 기대치와 성공 조건을 짧은 주기로 함께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매니저와 구성원이 투자한 노력이 서로가 합의한 성공에 더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으며, 이것이 신뢰 형성의 시작이 된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나쁜 것이지만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할 수 없는 관리자는 더 나쁘다.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며 조금씩 더 큰 일과 결정에 대한 위임이 이뤄질 수 있고, 이 과정이 반복되며 어느 순간 관리에 들어가는 노력이 줄어들며 기대하던 높은 위임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의외로 신뢰 형성 초기 단계에서 매니저의 높은 관심을 지나친 간섭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매니저가 권위의식이나 파워 게임에 매몰되지 않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복잡한 관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을 선호할 이유가 있을까?

따라서 구성원이 기대한 만큼의 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 원인을 '상호작용' 내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역량이 충분한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매니저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니저의 매니저에게: 코치와 매니저 사이의 균형

상위 관리자가 중간 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실무자의 일에 직접 개입하는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위임은 결국 성과 창출을 위한 도구이다. 만약 이러한 개입이 성과 향상에 이바지했다면, 기업 입장에서 부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품질에 깐깐한 CEO가 출하된 상품을 하나하나 직접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소비자를 위한 진정성으로 여겨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간 관리자의 동기가 저하되고, 팀원과 중간 관리자 간의 신뢰 형성이 지연될 수 있다. 따라서 상위 관리자는 중간 관리자가 조직의 목표를 잘 이해하고, 팀원들과의 신뢰 형성을 통해 올바른 위임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만, 중간 관리자의 동기 부여에만 지나치게 집중해 실무자와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해서는 안 된다. 일의 결과뿐 아니라 구성원 간의 소통의 질도 상위 관리자의 책임하에 있기 때문에, 중간 관리자에게 적절한 코칭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실무자와의 소통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상위 관리자, 즉 매니저의 매니저는 중간 관리자와 목표 공유, 과업 이해 및 위임 과정의 이행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실무자와의 소통을 유지하여 성과 달성에 장애물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만약 조직이 홀라크라시(Holacracy)와 같이 극도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성과 창출을 해낼 수 있다면 다른 얘기겠지만 아직은 이상론에 가깝고, 대개의 경우 기업의 공동 목표를 중심으로 조직의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 볼 수 있음에도 매니저는 혹여나 '마이크로 매니징'한다는 평가를 받을까 노심초사하느라 관리가 허술해지고, 실무자는 온전한 자율성을 기대하다 회사의 목표와 어긋난 일에 시간을 쏟기도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건전하다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무자의 입장에서 매니저의 관리 방식을 볼 때 느끼는 것과 매니저가 되어 느끼는 것이 사뭇 다르다. 글을 적으면서 마치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것처럼 잘못 읽힐까 조심스러웠지만 온라인이나 경영 서적에서 다뤄지는 위임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 매니저의 책임에 대해서만 다루거나 조직적으로 완성된 상황을 중심으로 설명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위임에 대한 기대가 이상적인 형태에만 맞춰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위임의 품질이 충분한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며, 성숙하기 까지 지난한 신뢰 형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매니저와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전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위임 과정에서의 성공은 매니저와 구성원이 함께 달성하는 것이며, 이러한 성공은 조직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지며, 우리는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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